♤조현신경정신과♤


:: 너 자신을 알라!!
조현 (2004-10-27 22:05:11, Hit: 7217, Vote: 812)
  너 자신을 알라!
  철학자들의 말 중에 가장 흔히 인용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어릴 땐 이렇게 멍청한 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누구나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안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환자가 병과 싸워 이겨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가를 아는 것이고, 필자가 환자들에게 할 일중에 하나가 자신의 병을 잘 알도록 도와주는 일이고 보니 옛 철학자의 말이 더더욱 절실하기만 하다.
  필자는 작년에 폐렴에 걸린 적이 있다. 당시 업무 등으로 심신이 피로했었기에 발병 초기에 보이던 잔기침, 근육통, 피로감 등을 단순히 몸살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약을 처방해서 먹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증상은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기침이 심해지며 짙은 가래와 고열도 동반되어 다음날 결근을 하게 되었다. 상태가 이 지경이 되자 가족들이 내과 진찰을 받아 보자고 했지만, 의사인 나는 ‘내 병은 내가 안다’며 고집 부리다가 하루를 더 고생하였다. 결국 다음날 동료의사에게 폐렴이라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하였다. 필자가 내과 의사에게 치료받는 것을 늦췄던 것은 ‘내 병은 내가 잘 알아’ 하는 오만한 마음과 ‘이러다가 좋아질 거야’ 라는 이전의 경험에 따른 안이함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고생하지 않고 간단히 치료될 병을 앓으면서도 며칠동안 고생을 사서 한 셈이었다.
  필자가 폐렴을 앓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감기라고 고집하며 치료를 하지 않고 고생했던 것처럼, 우리 환자들도 자신이 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48세의 김씨는 병원에서 4년이 넘게 입원치료를 받아 오고 있는 분이다. 회진 때마다 필자에게 자신이 지구 자전의 비밀을 밝혔고 이미 청와대에도 보고가 되어 있는데 이런 기밀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이곳에 가두었을 뿐이라며 퇴원을 요구하고, 면담을 심도 있게 할 때엔 ‘자전의 비밀’에 대해서 그림까지 그려가며 그럴듯한 설명을 덧붙인다. 또 다른 환자인 36세 양씨는 필자에게 치료받은 지가 5년이 넘었다. 이 환자는 발병 초기엔 필자를 만나면 ‘뇌가 세균으로 썩어가고 있어요. 이미 몸으로 퍼지고 있는 상태에요. 의사님도 몸 간수를 잘 하십시오’라며 필자를 걱정하는 간곡한(?) 부탁을 했다.
  의사로서 경험이 부족한 지난날에는 환자들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병이라며 마치 논쟁을 벌이듯이 면담을 진행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환자들은 의사라고 해서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다 알 수가 있겠느냐고 오히려 한숨을 쉬면서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도와주고자 하던 필자의 의도는 온데간데없어지고 환자의 고통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돌팔이가 되고 만다. 필자 스스로는 자기의 병을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가 안타까워서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환자에게 심리적인 고통을 더해준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의 생각을 옳다고 인정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환자와 면담시에는 항상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환자가 갖고 있는 생각을 매몰차게 무시하는 듯이 보이지도 않지만 환자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인식을 시켜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의 주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해서 잘 알도록’ 하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다행히도 이렇게 ‘자신의 병에 대해서 알도록’ 도와주는데 약물치료가 상당한 도움이 된다. 위에서 말했던 양씨는 발병초기에 빨리 약물 치료를 시작하였고 뇌가 썩어 간다는 자신의 생각이 진짜가 아니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필자와 지속적인 치료를 하면서 예전과 같은 엉뚱한 생각으로 힘들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의사들은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서 잘 알도록 하는 것을 ‘병식(病識)’을 갖도록 한다고 말한다. ‘병식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환자가 병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만 의사가 처방하는 약을 잘 복용하기 때문이다. 양씨의 경우 적절한 치료를 통해 병식을 갖게 되었기에 꾸준한 약물 치료가 가능한 것이며, 현재까지 재발되지 않고 유지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병식을 갖고 있어야 재발의 조짐을 인식하며, 빨리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찾아오게 된다.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29세의 임씨는 벌써 3차례 재발하였지만 재발되려는 조짐을 감지하면 스스로 병원에 입원을 신청하고 1-2주정도의 짧은 기간만 입원하고 안정된 상태로 조절되어 퇴원을 한다. 이 환자가 재발되어 치료시기를 놓쳤다면 2개월 이상 입원을 할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갖고 있는 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기에 입원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누구나 자신의 얼굴은 스스로 보지 못한다. 자기 얼굴을 보기 위해서 거울이 필요하듯이 자신의 내적인, 심리적인 모습을 비출 때 필요한 마음의 거울이 되고자 한다. 나를 통해서 환자가 ‘아, 내 마음이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느끼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것이 병식을 갖게 하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를 위해서 노력하듯이 환자 스스로도 자신의 문제가 뭘까 하는 성찰의 마음이 필요하다. 입원해 있는 것이 남들로부터 구속을 당하고 피해를 보고 있다고 믿는 것보다는 왜 입원하게 되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 볼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호자들 역시 환자의 문제에 무관심하고 방치하기 보다는 환자의 병에 대해 잘 알고 대처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병원 혹은 요양원에 환자를 입원시켜 놓고 치료진이 모든 것을 다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환자가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것을 고심하는 것이 절실하다. 환자는 스스로 병에 대해서 탐구를 해야 하듯이 보호자도 환자의 병에 대해서 온전한 인식을 갖고 적극적인 간병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환자들이 입원된 이유를 알면서도 이렇게 물어보곤 한다.
  “병원에는 어떻게 입원하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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